눈부시게 빛나본 적도 없는데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한 번은 사소한 일로 내 얼굴을 때렸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지휘권 밑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그렇게 다루는 데 습관이 베어 있었다. 이 순간 내가 더없이 분명하게 느낀 것은 사회에 저항하는 오래된 나의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개적인 반란 행위로 십장인 유스첵의 얼굴을 갈겼다. 나의 존엄성은 주먹질을 가한 그의 턱에 놓여 있었다. 그다음 결국 제압당하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이는 당연히 신체적으로 훨씬 나약한 나였고,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고통스럽게 매를 맞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용기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가 우리 자아의 모든 것이고 우리의 전 운명이 되는 삶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몸이었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굶주림과 내가 당했던 구타와 내가 가했던 구타속에서 말이다. 피골이 상접한 채, 때가 덕지덕지 앉은 내 몸은 나의 비참함이었다. 내 몸은 내려치기 위해 힘을 줄 때 나의 신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존엄성이었다. 신체적인 폭력 행위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분열된 인격을 복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구타를 통해 내가 되었다.
마지막 챕터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중에서.
신기패라는 물건이 있는데 위와 같이 생겼다. 좌측 하단에 덧붙여진 부분은 갑(匣)의 옆에 나와있는 성분표를 찍은 것이다. 저 분필같이 생긴 것으로 개미가 자주 다니는 곳을 칠해놓으면 신기하게도 개미들이 엄청나게 죽는다. 하루이틀 지나면 족히 몇백마리는 그 자리 아래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것으로 개미가 지나가는 길목에 선을 그어도 신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개미가 아예 그 선을 밟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수백마리가 우글우글 하는 곳에 그어놓으면 개중에 몇은 금을 밟기는 한다. 그래도 얼마 안가 활동이 둔해지고 결국 죽어서 오그라든다. 그래서 개미가 있는 곳에 원을 그리면 개미들이 그 원에 갇히게 된다.
집을 며칠 비우기 전에 실수로 쥬스를 컵에 따라 놔뒀다. 당연히 우글우글 모여들었고, 다시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개미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먹을 것은 충분했다. 족히 몇백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장난기가 발동해서 컵 주위에 크게 원을 그렸다. 개미들이 어떻게 하나 보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그냥 싸그리 박멸이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개미들은 갇혔다. 원을 그린 직후 몇분 안에 개미들의 운동은 눈에 띄게 둔해지거나 멈춘다. 멈춰버린 녀석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면 조금씩 자리를 옮기기는 하는데 옮긴 뒤 그냥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수백마리의 개미들이 몇마리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개미들은 왜 죽었을까.
1. 그 수백마리의 개미들이 모두 신기패로 그어둔 선을 밟아본걸까.
2. 먹을것이 없어 죽은건 아니다. 먹을것은 원 안에 차고 넘치도록, 정말 개미가 죽을때까지 먹고도 남을 만큼 있었다.
3. 할일이 없어 죽었나.
4.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라는 생각에 죽은건가. 희망이 없어서?
모르겠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각각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위한 자리로서 마련된 것인데, 이런 구분이 필요한 것은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이 공적 영역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과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를 끌어당기는 특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매력'을 가진 사적인 것이 공적 영역에 진입해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면, 공적 영역은 그 매력에 눌려 거의 완전히 위축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매력'은 사적인 것이 갖고 있는 힘을 표현한 것으로, 공적 영역에서는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생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는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생의 필연성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인정된다. 필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적인 문제를 공적인 영역에서 다루게 되면, 필연성의 힘에서 그보다 약해 보이는 공적 문제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앉게 된다. 자유의 문제보다 빵의 문제가 더욱 시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는 사적 영역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 김선욱 '정치와 진리' 부분
바람이 바람을 넘쳐 플래카드를 흔들고
잎 넓은 나무가 잎 넓은 나무를 넘쳐 푸르른 날
나는 경건하였다.
나는 불순한 상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나를 조절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당신이 바라볼 때마다
나의 침묵은 부활한다.
나의 시선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격렬한 밤이 당신을 지나갈 때도
나는 기하학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내 시선 끝에 서 있는 대우아파트
나는 그의 정지 자세를 이해한다.
피고 지는 것들은 지겨워.
나는 서서히 낡아갈 것이며
나의 최후는 단호하다.
플래카드 아래로 당신이 당신을 넘치며 걸어온다.
당신이 당신에게서 흘러나와 긴 그림자를 이룰 때
잠시 공중에 머물렀던 낙엽이
당신의 배후를 횡단한다.
당신은 혼자 고개를 흔든다.
나는 당신이 지겹다.
결정
이장욱
아침에 깨어나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다.
사소한 돌멩이들이 차갑게 침묵할 것이다.
사물들은 후퇴할 것이다.
나는 약속을 취소한다.
세면과 식사 준비와 출근을 취소한다.
창문이 얼어붙는다.
바깥과 안의 대기가 격렬하게
단단한 물방울을 만들고 있다. 서서히
모든 것이 정지한다.
이제 유리는 어느 먼 곳의 금속,
어지러운 지평선에서 이상한 마음이 불어온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반성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는 신비로운 과거가 없으며,
나에게는 늙으신 아버지가 있으며,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
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철학의 즐거움 중에서)
칸트의 철학을 이어 독일에서 일련의 철학이 생겼다. J.G.피히테・F.W.J.셸링・G.W.F.헤겔의 철학, 즉 독일관념론이 그것이다. 피히테는 칸트 철학에서 출발하여 현상계와 물자체라는 이원론을 넘어 절대적 자아라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통일적인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셸링은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는 개념을 넘어 모든 것의 근저에 존재하는 자기동일적인 절대자라는 개념에 도달하고, 헤겔은 셸링 철학에서 출발하여 절대자를 자기동일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겔의 철학은 이성을 본질로 하는 절대자의 자기전개에 의해 모든 사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며 이성주의적 형이상학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헤겔의 철학은 헤겔 생존에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사후비판을 받게 되었다. 즉 이성주의적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비이성주의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러므로 헤겔이후(1830년대 이후)의 철학을 흔히 현대철학이라고 한다. 헤겔철학의 비판은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 나눈다.
실증주의적 입장으로부터의 비판은 헤겔 학파 내부 즉 L.A.포이어바흐 및 K.마르크스・F.엥겔스이다. 포이어바흐는 철학은 육체를 가지며 공간적・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감성적 인간을 존중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인간학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A.쇼펜하우어와 S.A.키르케고르는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부터 헤겔비판을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며 오히려 비합리적 맹목적인 삶의 의지라 생각하고 염세적 철학을 내세워 생의 철학의 연원이 되었고, 키르케고르는 헤겔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살고 행위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실존 철학의 연원이 되었다. 헤겔비판으로 생긴 이런 비이성주의적 경향은 그 후 계속 이어져 현재에 이른다.
실증주의적 경향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지금도 하나의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E.마흐 등의 실증주의, C.S.퍼스・W.제임스・J.듀이를 주로 한 미국 철학자가 주장하는 프래그머티즘, R.카르납 등의 분석 철학이 있다. 이 분석 철학은 현재의 영미 철학의 주류를 이룬다.
비합리주의적 경향으로는 철저히 생이라는 것을 긍정하려고 한 F.W.니체, 비약적・창조적인 생을 직감으로 포착하려는 H.베르그송, 생을 해석학적으로 잡으려 한 W.딜타이 등의 생의 철학이 있으며,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포착하려는 M.하이데거・K.야스퍼스・J.P.사르트르 등의 실존 철학이 있다. 이 밖에 후설의 현상학도 극히 유력하며 실존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근 영미계 언어분석 철학에서는 마흐나 전기(前期)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논리실증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경향도 보인다. 즉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을 발전시킨 W.O.콰인 등의 네오프래그머티즘과 또 하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G.라일・P.F.스트로슨・J.오스틴 등의 영국 일상 언어학파이다. 1960년 이후 위와 같은 활동은 상호비판과 융합을 보이며 광범위한 영어권 철학으로 부상하였다. 영미 외에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포함, 공통 사색의 장을 이루고 활동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회정세의 변화로 실존 철학이 급속히 약화되고 E.후설의 현상학이 재조명되어 여러 과학과 교류하는 현상학운동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확대되었다. 해석학도 H.G.가다머등이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는 정신분석・민족학과 관련을 가지며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흐름을 탄 비판적 사회이론은 영미계의 언어행위론을 받아들이며 J.하버마스가 독일에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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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루 종일
어떤 생각이란 것에 매달린 셈이다
한동안 뜨겁게 나를 지나간
끝내 내 것 아니었던 사랑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
저녁 일곱 시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벌겋게 타오르던 노을이
쇠잔해져 어둠에 사그라지는 것만 봐도 안다
마지막 네 눈빛이 그러하였다
(엄원태 '저녁 일곱 시'의 2, 4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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